캐논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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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중인 포스터

■ 작업노트



김가은_어떤, 어떤 장면


사진을 배우며 느낀 사실 중 하나.  사진가는 카메라 너머의 대상을 부단히 바라보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잘 바라보고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 묻는다면 그건 엄마일 것이라고. 늘 그렇게 생각해 왔다.

아버지에 관해 묻는 대신 말 없이도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싶었다.

우리의 시간을 받아들이기 위해 엄마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나는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물리적 거리 만큼이나 마음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한번 휩쓸리고 남은 기억들은 불완전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엄마의 모습을 담는 것, 그리고 모니터에 띄워진 모습을 보며 또 다른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었다.

더는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장면들이 눈앞에 명백히 있다는 이유로 ‘지금’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앨범 사진들과 카메라로 남기는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은 이미 지나간 것들을 자꾸만 불러왔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들은 자꾸만 현재에 무언가를 덧붙였다.

그 장면들이 순간의 단절만을 이야기하진 않을 것이라고.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 또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과거와 현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라면, 생성에는 시제가 없지 않을까?

그리고 이 믿음이 계속해서 셔터를 누르게 만들었다. 다음 장면으로 그리고 또 다음 장면으로 ………

 

이 장면들은 무거운 덩어리들을 풀어보고, 인정하고, 잘 보내주는 과정에 있다. 그리고 엄마에게 보내는 일종의 편지이기도 하다.

남겨진 앨범과 사진들을 보면서 엄마와 나의 시간을 물었고. 이제 대답하고 싶다.

모든 걸 헤아릴 순 없지만 지금 이대로도 아주 괜찮다고. 우리 모두의 내일도 괜찮을 것이라고 말이다.




박정윤_NECAMERAMANCY


1998년 한국, 여자 아이가 태어난다. 그리고 같은 해, 아주 특별한 필름 카메라가 생산된다.


아버지가 독일에서 사온 필름 카메라, CANON PRIMA ZOOM 85N.

이 필름 카메라의 생산년도와 나의 생년은 동일하다. 나는 우리가 동갑이라는 사실에 더욱 깊은 유대감을 느끼고 있다. 

우리 가족이 독일에서 생활하던 시간 동안 이 필름 카메라로 찍은 수많은 사진들은 소중한 추억으로 앨범에 보관되어 있다. 

세월이 흘러도 필름은 여전히 선명하여, 그때의 행복과 웃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한국에 돌아온 후,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아버지의 필름 카메라는 잠시 우리 삶에서 멀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작년, 오랜 기다림 끝에 그 카메라는 다시 나의 손에 돌아왔다. 나는 이 카메라로 나만의 순간부터 평범한 일상까지 모두를 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카메라는 이제 나의 세 번째 눈이 되어, 친구들과 가족들의 웃음과 일상의 소중한 순간을 기록해 나가고 있다.

 

필름 카메라와의 첫 만남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된다. 첫 셔터를 눌렀을 때의 감동과 그 특유의 느낌은 잊혀지지 않는다

처음 필름을 사용했을 때는 서툴렀지만, 시간이 지나 인물의 표정부터 배경의 구도, 빛의 흐름까지 익혀가며 익숙해 짐에 따라 촬영하는 감각과 취향이 발전했다

또 필름을 디지털로 스캔한 후, 각 사진들에 담긴 이야기에 몰두하게 되었다. 세피아 필름 위 네거티브 형상들이 마치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처럼 느껴졌다

이 사진들은 찰나의 순간을 포착 하였지만, 필름 위에 강렬하게 남아 기이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필름 카메라로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담아내며, 필름 카메라가 자아를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순수한 질문을 던졌다. 

빌 모리슨이 <Decasia>를 통해 썩고 변질된 파운드 푸티지 필름의 아름다움과 기괴함을 보여주었다면, 내 아버지의 오래 된 필름 카메라 스스로도 이러한 기묘한 힘을 가질 수 있을것만 같았다.

 

2024년 현재 나와 동갑인 이 필름 카메라가 강령술을 통해 살아난다면, 나의 주변과 세계를 어떤 시각으로 담아낼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이를 바탕으로 <NECAMERAMANCY>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박하은_Feeling in Between


Feeling in Between 연작은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묻고 의심하는 과도기에 관한 이야기다. 

학생과 사회인의 경계에서 느끼는 위태롭고 불안정한 감정을 사이에 끼어 있는 사물과 대상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지방에 내려와 학교에 다니면서 경험한 나의 공동체는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자주 보았다. 

목적지 없는 달리기, 무게가 되는 나이, 깨어진 관계로 반복되는 소음과 적막. 그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슬퍼했고 가라앉은 공기는 사람들을 쉽게 전염시켰다.

 

모든 사회는 인생 주기마다 특정한 역할과 과업을 기대한다. 한국은 그 무게가 유독 무거운 모양이다. 

키부터 성적까지 모든 것이 서열화되어 속도와 순위가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이곳에서 우리가 칭찬받을 만한 일은 ‘그 애’보다 앞서 있다는 사실 뿐이다. 

모든 성취의 판단 근거는 타인이 된다. 동시에 우리는 누군가보다 뒤처진 ‘그 애’다. 기뻐할 새도 없이 슬퍼지는 도돌이표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경쟁하는 요령을 터득했다. 

분투해 얻은 결과는 지독한 비교 의식과 인정 욕구였고 그것은 우리 사회 안에 복잡하게 똬리를 틀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이 불안감이 일시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학생과 사회인 사이에서 느끼는 낯설고 모호한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른이라는 것은 불안정을 안정으로 간주하고 고독과 부담을 노련하게 대처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긴장을 체화한 나머지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표정을 잃는 경지에 이르는 것. 우리의 불안정성은 단지 인생의 짧은 주기에 갇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안도한 나는 이 방황을 여행이라 부르기로 했다.

 

성인이지만 어른은 아니야.’ 이 모호한 선언을 이제는 설명할 수 있다. 사회가 규정하는 나이를 따르자면 ‘성인’이라는 범주에 도달했지만, 본인이 정의하는 ‘어른’에는 자신이 부적합하다는 말. 

그러니까 스무 살을 넘겼음에도 여전히 결정과 변화가 두렵고,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적당하겠다.

 

세 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풀과 벌레가 무성한 경산은 대구와 인접하여 같은 생활권을 공유한다. 그중 부호리는 몇 발짝 곁에서 금호강이 흐르는 동네다. 

매년 100여 명의 사람들이 사진을 공부하기 위해 이곳으로 온다. 그 자발적이고도 어쩔 수 없는 발걸음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익숙한 둥지를 떠나 새 집을 구한 우리는 이제 스스로 밥을 짓고 빨래를 돌리고 전기세를 낸다.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해지지 않는 경험을 하면서 말이다.

 

나와 나의 친구들은 학생과 사회인 사이 그 어딘가를 배회하며 우리가 누구인지 질문했다. 그리고 낯선 터전에 적응하며 경산이라는 경유지에서 비행을 준비한다. 

제도권을 졸업하면 여행이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때를 늦추거나 앞당기려 하지 않았다. 어른이 되지 않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송상현_병원


1945년 2월 16일, 스물일곱의 청년 윤동주는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었다. 정확한 사인은 알려진 바 없으나, 같이 수감된 사촌 송몽규의 증언에 의하면 일본군 생체 실험의 결과로 추정된다. 

그리고 3년 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나오며, 그는 사랑했던 조국에서 국민 시인이 된다. 


2018년 겨울, 유년 시절부터 윤동주를 흠모했던 나는 도시샤 대학에 윤동주의 시비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일본에 갔다. 윤동주의 시비가 왜 일본에 있을까. 

의문을 품으며 시비를 향해 걸어가던중, 어느 일본인과 대화하게 되었다. 그 일본인은 윤동주의 시와 삶을 통해 평화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를 기리며 일본의 과거를 반성했다. 

부끄러웠다. 나는 윤동주를 좋아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날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점점 한국과 일본의 관계, 평화, 더 나은 미래 등을 논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들은 단순하게 말하기에는 복합적인 문제로 얽혀 있다. 나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나는 한국의 저항 시인 윤동주(尹東柱)가 아닌, 일본의 청년 윤동주(平沼東柱)에 대해 알아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게 됐다. 윤동주는 대학에 다니기 위해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그 사실을 평생 부끄러워하며 슬퍼했지만, 결국 한국의 민족시으로서 인정받게 된다. 이렇게 한국과 일본의 경계에서 방황했던 윤동주를 통하면, 다양한 의미가 생성될 가능성을 느꼈다. 

예상치도 못한 생각들이 자유롭게 모이면, 무언가 조금은 보이지 않을까. 


자료를 찾다가 일본에 윤동주를 기념하는 모임(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立教の会)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활동에 참여했다. 

그중 어느 회원이 나에게 윤동주가 원래 시집의 제목을 병원으로 하려 했다고 말해주었다. 자신의 시를 통해 사람들이 내면의 치유를 경험하며,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병원」. 윤동주는 세상을 바라보며 글로써 병원을 지었다. 나는 사진가로서 그의 시선을 이미지로 남기며 또 다른 병원을 짓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윤동주의 모교인 릿쿄 대학과 도시샤 대학, 그의 자취방 주변, 생전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놀러 갔던 우지 시, 삶의 마지막 장소인 후쿠오카 형무소 등 다양한 곳을 돌아다니며 윤동주가 바라보았을 풍경을 기록했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윤동주의 시 <병원>의 구절처럼, 이 작업에는 명확한 답이 없다. 나 역시 계속 찾아가는 중이다. 세상 그 무엇도 사람들의 믿음만큼 명료하고 단순하지 않다. 

그렇기에 다양한 생각이 모일 장소가 필요하다. 이 작업이 그런 회색 지대가 되면 좋겠다.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길을 헤맬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우리가 하는 고민들 사이에 중요한 것은 흩어져 있을 것이다.


차연의 풍경 속에서, 윤동주와 만날 수 있길 바란다.




홍준협_타임머신


사람의 마음에는 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는 미처 전하지 못한 진심과 여러 감정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 문을 닫은 채로 살아가다 결국 마음에 병이 나고 자신을 잃어가는 듯해 보였다.

나는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느꼈고, 그렇게만든 것이 이 '타임머신'이라는 작품이다.

'타임머신'은 후회라는 감정을 담아, 과거의 미련으로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는 주인공을 그려낸 이야기이다.

작품에는 두 가지의 시간 설정이 있다.

첫 번째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물리적 시간이고, 두 번째는 여자 주인공을 기다림 속에서 헤매는 남자 주인공의 심리적 시간이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기다리는 시간은 여자 주인공과의 시간으로 다가가는 것이고,

초침 소리가 들리는 시간이 그녀를 만나고자 시간을 헤매며 여행하는 시간이라 설정이다.

작품 내에 등장하는 초침 소리는 시간을 여행 중임을 알려주는 장치이며, 초침 소리가 끝나는 지점은 여자 주인공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시점이고 남자 주인공이 시간여행 끝에 원하는 시간에 도착함을 의미한다.

나는 '타임머신'을 통해서 후회라는 감정을 전하고, 자신의 마음을 숨겨서 말을 전해야 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너를 사랑했기에, 과거의 모든 것들이 후회된다.

왜 그랬을까.

그 말을 전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었나.

그럴 때마다 네가 보이는 것 같다.

과거와 똑같은 네가, 현재의 나의 앞에 나타난다.

이번엔 진짜일까?

진짜라면, 이제라도 솔직하게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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